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문단 편집) === 다룰 이슬람 반란 === 인도네시아 독립 전후에 존재했던 대표적인 내란 중 하나로는 이슬람 민족주의자인 스카르마지 마리잔 카르토수위료(Sekarmadji Maridjan Kartosoewirjo)가 새로운 인도네시아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인도네시아의 이맘으로 선포하면서 인도네시아 이슬람국가(다룰 이슬람)를 수립하여 발생한 반란이 있다.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서는 네덜란드에 맞서기 위해 여러 민병대가 조직되었다. 카르토수위료는 이러한 민병대 중 서부 자바에서 활동하던 실리왕이(Siliwangi) 사단의 지도자였다.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네덜란드와의 협상이 진행되고 인도네시아의 완전한 독립이 확실시되어가자 수카르노는 모든 민병대에 해산을 지시했는데 카르토수위료는 이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을 인도네시아의 이맘이라고 지칭하면서 인도네시아 이슬람국가의 수립을 선포하였다. 카르토수위료는 위에서 언급한 APRA와 동맹을 맺었는데 APRA 부대가 힘도 못 쓰고 진압되고 주요 인물들이 싱가포르 등으로 도주하자 정부에 항복을 거부한 APRA 잔당들을 흡수하였다. 이외에도 카르토수위료는 1952년에 중부 및 남부 술라웨시에서 반란을 일으킨 전 대통령 경호원인 카하르 무자카르, 1957년에 술라웨시 주에서 자치권 등의 문제로 정부에 대항한 반란을 일으킨 보편투쟁헌장(Permesta), 1956-1957년 사이에 수마트라와 술라웨시 북부 등에서 개별적으로 일어난 반란을 통합하여 출범한 1958년의 인도네시아 공화국 혁명정부(PRRI) 등과 협력하였다.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어 낸 인도네시아 공화국은 1956년을 기점으로 반정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인도네시아는 1957년에는 아체를, 1959년에는 남칼리만탄을 수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1962년 6월에는 가룻(Garut)에서 카르토수위료가 체포되면서 9월에 처형되면서 다룰 이슬람은 해체되었고 결국 1965년에 남술라웨시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잔당들이 항복하면서 군사적 충돌은 끝이 났다. 다룰 이슬람은 1962년에 결국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잔당이 일부 지지자들과 함께 1970년대에 급진적 [[이슬람주의]]를 내건 무장 조직인 제마 이슬라미야(Jemaah Islamiyah)를 결성하였다. 제마 이슬라미야는 1970년대부터 폭탄 테러, 정치권 개입 시도 등의 여러 반정부 활동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1976년부터 2005년까지 아체의 독립을 위해 조직된 자유 아체 운동(GAM)의 반란 주도자 하산 디 티로(Hasan di Tiro) 또한 다룰 이슬람의 조직원이었다. 자유 아체 운동은 2005년 8월에 [[헬싱키]]에서 평화 조약을 통해 모든 적대적 군사 행위의 중단이 이루어졌고 합의 조건에 따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진압군과 경찰의 철수와 정부에 수감되거나 타국에 망명한 GAM 조직원의 석방과 아체 기반 정당의 설립을 촉진하고 GAM은 무장해제하였다. 이 외에도 전후 인도네시아 공화국과 동인도네시아 자치국의 통합 과정에서 말루쿠인들이 반발하여 남말루쿠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기도 하는 등 독립 전후로 여러 내란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